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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수기

치유사례

경기도 이00님의 체험수기

innervy 2016.09.05 11:31 조회 수 : 193

내 젊음을 빼앗아간 아토피에게 감사의 인사를 쓴다.‘왜 나에게 찾아왔냐’고 이유를 묻기 보다는 ‘너가 있어 내 인생은 새로웠다’고.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씩씩한 군인이 되었다. 팔뚝에 500원 동전 만한 부스럼이 하나 생긴게 사나이의 흠이었다. 잘나지도 못나지도 못한 내 얼굴에 돋은게 아니라서 다행이지만. 그러나 부스럼 하나가 내 젊음을 빼앗아갔다. 인생을 놓고 싶은 적도 있었다.3년 내내 나의 마스코트가 부스럼 하나였다. 없어지지 않는 부스럼 을 없애려 피부과를 찾았다.

 

“무슨 남자가 이만한 것으로 병원에 왔냐”는 핀잔을 들었다. 병원에서 조차 대수롭지 않은  부스럼이 나중에는 불치병이 되었다. 양방에서의 스테로이드 연고제 처방은 오히려 내성을 키우는 역할을 했다. 처음에는 치료가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지속적인 스테로이드 연고제 사용은 더 많은 부작용을 낳는다. 면역성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나를 아토피 전문가로 만들었다.

 

하늘은 나를 너무나 사랑하였다. 취업을 하고 나의 반쪽을 찾는 행복도 주셨다. 덤으로 온몸을 긁어야 하는 수고로움을 주셨다. 내가 사양한다고 해서 거두어가지 않았다. 어렵게 구한 직장을 그만 두어야했다. ‘뭐 아토피 하나로 엄살이.... 하며 비난할 사람이 있겠지만 그러나 나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온몸을 파고드는 가려움은 나의 두손이 다른일을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5년째 실업자다. 젊은 나는 돈이 없는 걱정보다 더 큰 고통이 밤이었다. 밤이 무서웠다. 무의식중에 긁기 때문이다. 밤마다 손톱은 봉숭아 물들인듯 했고, 이부자리는 피범벅이다. 그래도 낮에는 이성으로 통제할 수 있지다 하지만 그또한 힘든 숙제였다  무의식의 세계에서 가려움은 통제 불능이다. 하늘의 영역이었다. ‘왜 내게 이런 아토피를... 라고 원망할 곳이 없었다. 돈도 없는 내가 어머니의 뒷바라지로 병원 순례를 시작했다. 아토피가 불효자를 만들었다.

 

온갖 것을 다 해 보았다. 아토피가 양방에서는 불치병이요 한방에서는 난치병이었다. 좋다는 전문병원을 찾아도 내 몸은 ‘좋아지려고’ 가 아니라 ‘나빠지려고’에 열중이었다. 서울의 S대 대학병원 피부과에 갔다. 이곳은 ‘뭔가 다르겠지’하는 희망마저 무산되었다. 에 휴~하루에 검사비만 무려 삼십만 원 이상이 들었다. 민간요법도 아니었다. 허준 같은 한의사도 내 인연이 아니었다. 피부약복용으로 간수치가 위험수위까지 간적도 있었다,

 

용하다는 한의원의 한약을 단 한 봉을 먹고 대변이 줄줄 새는 부작용도 있었다. 마려운 느낌 없이 변이 나왔을 때 난 화장실에서엉엉 울었다. ‘이렇게 죽게 되는 구나 .... ‘그래! 먹고 싶은 후라이드치킨, 시원한 맥주 라도 실컷 먹어보고 죽자!! 아내와 눈물을 흘리며 먹었다. 그러나 꼭 죽고 싶을 만큼의 고통에 댓가를 받았다. 온몸의 가려움은 물론 눈.코.입이 부어서 내 얼굴은 헐크가 되어버렸다. 얼굴까지 번져서 난 이제 인간이 아니라 외계인이었다. 차라리 죽는 게 덜 고통스럽지 싶었다. 닥터 피쉬를 알게 되었다. 물고기가 내 아토피 상처를 먹어 주는 방법이었다. 물고기도 아토피가 불치병이라는 사실을 알았는지 도망을 갔다. 닥터피쉬의 본고장 터어키에 가면 낫겠다는 희망을 가졌다.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귀인을 만났다. 우리나라에 고치는 사람이 있단다. 믿고 싶지 않았다. 믿어지지도 않았다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난 터어키로 갔을것이다. 어머니가 알게 된 여래원도 우연히 목욕탕에서 들은 허접한 정보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의 간절한 권유를 뿌리칠수가 없었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받아들였다. ‘일주일만 해 보자!’는 마음을 가졌지만 차마.... 약과 연고는 쓰레기통에 버릴 수 가 없었다. 그래도 과학의 시대에 과학으로 만든 약이 나를 살려 주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인생역전은 비과학적이고 비상식적이었다. 여래원에서는 특별한 설명이 없었다. 비누처럼 사용하는 시커먼 고약 한 장주며 이태리 타올로 빡빡 미르란다. 나~원~참! 아토피 만5여년에 의사면허증만 없지 거의 의사나 다름없는 나의 의학상식에 어긋나는 방법이었다. 그렇다고 이방법을 쓰면 어떻게 된다는 친절한 말 한마디도 없다. 이태리 타올로 밀든 말든 너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라고 눈으로만 말한다. 어머니의 눈이 나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고약비누를 들고 목욕탕에 갔다. 2시간을 밀었다. 믿을 수 없지만 거북이 등처럼 딱딱한 내아토피가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단 한번 의 목욕으로 가려움중이 거의 사라졌다. 가렵지 않으니 살 것 같았다. 거짓말 같았다 S대 병원 피부과가 진단을 내린 불치병이 이렇게 무너져 내렸다. 반신반의 아니 믿음이라곤 없었던 내 마음에 ‘정말 내 아토피가 사라지는가 보다’라는 약간의 희망을 가졌다. 두 번째 고약비누를 사용하고 나서는 가려움이 완전히 해결되었다. “아! 이거구나 내병 고칠수 있다”를 외쳤다. 확신을 가졌다. 나의 확신은 고약비누 사용 횟수에 비례했다. 그러나 복병이 있었다. 감기가 걸려서 항생제 주사와 약을 먹었을 때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시작했다. 난 특이하게도 얼굴부터 완쾌되었다. 보통은 얼굴이 마지막으로 낫는데.... 아마 하늘도 나의 잘 생긴 얼굴을 기억했나보다ㅋㅋ 이제는 색소침착으로 인한 얼룩이마저 재생되었다. ‘아토피만없어지면 얼룩쯤이야’ 했는데 이제는 예전의 나의 모습 되었다. 하늘이시여~ 아니! 여래원 원장님~감사합니다~

 

고약비누는 장애 요인이 없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게 한다. 피부재생이 이루어지고 나면 재발이 없다. 믿고 안 믿고는 고약비누를 써보면 안다. 자기 몸이 먼저 말해주기 때문이다. 난 아토피 발병 후 자장면을 먹지 못했다. 원장님께서 아무 말씀 없이 자장면을 시켜주셨다. 난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고 싶었지만 사나이 체면에 가슴으로 울었다. 정말로 아무렇지 않았다. 이제 가족들과의외식은 고기메뉴다. 그동안 먹지 못한 한을 풀을 만큼 많이 먹어도 몸에 이상이 없다. 나는 정상인이다. 모자 눌러 쓰지 않아도 되고 어깨 움츠리지 않아도 남에 시선을 생각 않해도 된다. 내 삶을 되돌려준 고약비누가 성공하기를 바란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듯이 고약비누가 이 땅의 피부과 질환에 한 획을 긋기를 열망 또 열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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